마음과 행동을 읽는 '현미경'

2013.05.3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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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행동을 읽는 '현미경'…분석적 사고와 인지과학 이해 필수
학문의 길

2012년 08월 23일 (목) 14:38:00 윤상민 기자 cinemonde@daenamoo.co.kr


『남자의 물건』(문화심리학),『FBI 행동의 심리학』,『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관계심리학),『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심리치유)... 서점에 한동안 넘쳐나던 처세술, 경영 관련 서적들이 한쪽으로 밀려간 자리를 차지한 심리학 관련 도서들이다. 국민소득이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 이상으로 올라갈 때, 심리학 분야의 학문이 꽃을 피운다는 이야기는 이렇게 한국의 서점가에서 쉽게 확인된다. 경제성장을 우선시하다가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서양에서 심리학의 역사는 100년이 넘었지만, 국내 연구는 이제 막 50년이 지났을 뿐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나 융의 분석심리학 정도로 협소하게 심리학을 다루던 시기를 지나 심리학의 외연이 이렇듯 확장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스무 살에 선택하는 학문의 길, 대학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김용준·정운찬 외 지음, 아카넷, 2005)에는 협소한 국내 심리학 연구를 벗어나 캐나다에서 새로운 심리학 틀을 만난 이정모 성균관대 명예교수(심리학)의 이야기가 소개돼 있다. 이 교수가 걸어온 길을 통해 심리학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 심리학과의 만남

이정모 교수는 고교 수험생 시절 여러 과목의 이해와 암기를 위해 과목별로 다른 공부 방식을 만들었다. 훨씬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이해한다는 것, 기억한다는 것이 어떻게 이뤄지는 것인지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다 교육심리학을 알게 됐고, 교육심리학이 학습, 이해, 기억과 관련된 분야라 생각하고 심리학과에 진학했다. 이 교수는 인문학이라 생각했던 심리학이 실제로 과학이며 실험실습, 통계분석 등의 방법을 사용하는 학문이란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그러나 이 교수는 국내 심리학이 행동주의 심리학, 동물의 미로학습 등의 조건형성 행동에 치우쳐 있음을 알고 캐나다로 떠난다. 여기서 이 교수는 실험을 사용하는 전통적 심리학을 벗어나, 인간의 마음을 컴퓨터에 유추해 생각하는 정보처리 패러다임의 인지심리학, 과학철학을 만나게 됐다.

■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밝히는 과학

심리학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은 그들의 지식 정도에 따라 심리학을 독심술, 점성술, 심령술로, 혹은 철학으로, 혹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등등으로 생각한다. 이 교수는 이런 오해가 심리학이 하나의 과학이라는 사실과 연구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말한다.

심리학은 일반적으로 인간의 마음과 행동의 모든 현상을 과학적 방법을 사용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과 행동은 뇌를 비롯한 신체에 의해 가능하다. 신체를 가진 인간이란 동물이 벌이는 현상이 마음과 행동이다. 그리고 동물의 활동은 자연과학의 주연구대상이다. 따라서 인간의 마음과 행동의 각종 현상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인간의 뇌, 신체활동은 자연현상이다. 그래서 심리학은 자연과학이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과 행동은 동물과 다른 수준의 특성을 지닌다. ‘철수가 영희를 좋아한다’고 할 때, 철수의 뇌와 심체의 변화는 물리적 자연현상이지만, 철수가 느낀 감정은 물리적 자연현상을 넘어선다. 인간이라는 종이 긴 역사를 통해 형성된 ‘좋아한다’, ‘사랑한다’ 등의 상징과 의미가 개입되는 것인데, 인문학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마음과 행동은 사회과학적, 인문학적 연구대상이 된다. 이런 속성 때문에 해외 대학에서 심리학과는 문리과대학이나 생명과학부에 속한다.

■ 무엇을 탐구하나

심리학의 연구 주제는 매우 광범위하다. 심리학과의 커리큘럼은 임상·상담 심리학, 산업·조직 심리학, 인지(언어,시지각,주의) 심리학, 생물 심리학, 문화·사회 심리학 등으로 세분화돼 있다. 요즘은 소비자·광고 심리학같은 응용분야도 확장되는 추세다. 이런 심리학의 연구 영역을 주제 중심으로 엮어보자. 인간에 관한 거의 모든 관심이 심리학의 연구 분야가 된다!

뇌와 신경계의 구조와 기능, 그리고 이 신경계가 어떻게 각종 심리 현사의 특성과 관련되는가에 대한 연구; 시각, 청각, 촉각 등 오감을 통한 자극을 어떻게 감각, 지각하는가에 대한 연구; 이와 관련해 우리의 의식, 주의, 수면, 꿈이 어떻게 이뤄지는가에 대한 연구; 말도 못하며 자아개념도 없는 유아가 각종 능력을 지닌 성인으로, 인지적 처리 기능에 손상이 생기는 노년까지 인간이 어떻게 발달하는가에 대한 발달심리 연구가 있다.

상과 벌에 따라 다른 행동하기, 신호등 따르기, 자전거 타기, 말 배우기 등과 같이 새로운 자극에 대해 그 의미나 반응을 학습하는 과정을 연구하는 학습심리 연구; 단기기억, 장기기억, 망각, 기억술, 인간 기억 데이터베이스 구조 등에 대한 기억심리 연구; 모국어 및 외국어의 말과 글을 쓰고 이해하는 능력의 습득과 이의 활용과정을 연구하는 언어심리 연구; 개념적 사고, 범주적 사고, 추리, 판단, 의사결정, 문제해결, 창의성 등의 각종 사고과정을 연구하는 사고심리 연구; 본능과 동기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동기심리연구; 감정과 정서의 유형과 작동 원리를 공부하는 정서심리 연구 등이 있다.

이 외에도 미국심리학회(APA)를 참조하면, 평가·측정 및 양화심리, 행동신경과학 및 동물행동심리, 예술-창의성심리, 컨설팅심리, 법심리, 스포츠심리, 인공지능 등 다양한 분야가 있다.





■ 심리학 공부에 필요한 다섯 가지

이 교수가 앞서 강조한 바와 같이, 심리학이 인문사회과학과는 달리 자연과학의 측면이 포함된 복합 과학이란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심리학 공부를 위해 이 교수는 다섯 가지를 주문했다.

첫째, 자신, 주변 인물 한 사람, 집단, 사회전체가 보이는 행동과 인간 형상 일반에 대한 진솔한 관심이다. 사람들의 언어, 사고, 대상 인식, 상호작용 특성에 대한 관심이 끊이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

둘째, 관심만으론 부족하다. 자신과 주변인들의 심리적 변화, 행동들에 대한 관찰을 분석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물론, 제멋대로 현상을 범주화하고 해석하는 것은 금물이다.

셋째, 분석적 사고를 위한 심리학적 기본지식이다. 자기가 가고 싶은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하는 심리학 개론서를 일독하며 용어와 기본이론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넷째, 상식적 심리학 수준에서 벗어나 방법론적 능력을 갖춰야 한다. 인간 행동 현상을 포함한 각종 자연 현상에 대해, 왜 그런 결과 현상이 나올까, 이렇게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이런 해석이나 이론이 맞을까 하는 사고 훈련을 평상시에 자주 해 보는 것이 좋다.

다섯째, 심리학은 교육학, 사회학, 경제학, 행정학, 정치학, 경영학, 커뮤니케이션학, 사회복지학 등의 사회과학 학문 분야의 기초다. 뿐만 아니라 생물학, 신경과학, 의학, 인공지능, 인간공학 등과 연계돼 있다. 따라서 심리학을 공부하려면 자기 분야와 관련된 다른 학문과의 연계성, 학제적인 연결성 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며 폭넓은 독서를 해야 한다.

■ 심리학의 경향과 도전과제

현재 심리학에서 주목받는 분야는 정보처리 패러다임의 인지주의의 정착과 발전이다. 인간의 마음을 컴퓨터에 비유해 하나의 정보처리 시스템으로 보는 이 관점은 인지과학이라는 학문으로 발전됐다. 또한 마음의 특성은 신체인 뇌의 특성에 의존한다는 신경심리학적 관점에서 행동의 특성을 밝히고자 하는 경향도 있다. 심리학에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는 순수이론 중심의 연구를 넘어서서, 다양한 응용분야로 확장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순수이론과 응용 연구의 구분은 희미해지고 있다.

앞으로 도전할 만한 연구 분야로는 인지신경심리, 노년심리, 사회인지심리, 인지공학, 사이버심리, 인간-컴퓨터-로봇 상호작용 연구, 재난심리 등이 있다. 심리장애를 비롯한 인간의 제반 심리적 적응 문제를 상담, 치료하는 분야 역시 계속 발전할 것이다.

■ 졸업 후 전망은?

졸업생들은 상담, 임상, 교직, 일반 기업체, 광고, 리서치, 컨설팅, 지능·적성 등 각종 검사 개발, 인간-컴퓨터 공학, 인공지능, 생체활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후의 진로는 심리학 전문가로의 길과 비전문가로의 길로 구분된다. 비전문가의 길은 여러 일반 분야의 직장에 취업하되 학부에서 배운 심리학적 지식을 적절히 활용하는 삶을 산다. 해외의 경우 학부를 끝내고 의대, 법대(로스쿨), MBA 과정을 하려는 사람은 학부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 교수는 국내에도 이 추세가 곧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 경우, 의대 지망생은 학부에서 신경심리학, 임상심리학, 인지심리학을, 로스쿨 지망생은 실험설계, 인지심리학, 사회심리학을, MBA 지망생은 산업심리학, 사회심리학, 소비자심리학을 수강하는 게 좋다.

학사 학위로만 심리학 전문가가 되려면 자기가 진출할 분야를 선택해 한 분야의 심리사(예: 임상심리사, 상담심리사, 발달심리사, 건강심리사, 범죄심리사, 산업심리사 등) 자격증을 얻는 것이 좋다고 이 교수는 조언한다. 한국심리학회 홈페이지(www.koreanpsychology.or.kr)에 각 분과학회별로 제공하는 심리사, 심리전문가의 유형과 자격요건, 자격증 제공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사회에서 ‘심리사’가 아닌 ‘심리전문가’라는 칭호와 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최소 석사 학위를 취득해야 한다. 2급이나 1급 심리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박사과정을 이수해야 하며 위 사이트에서 관련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daenamoo.co.kr